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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

새로운 시작

1월 초부터 관사 부근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다.

어머니가 생계로 피아노 레슨을 하셔서 일찌감치 곁눈질로 배워 칠 줄은 알지만 한번도 레슨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.

그저 만만해 보이는 곡들을 혼자 더듬어 보는 정도의 연주.

작 년 페이스북에 어떤 페친이(나와 나이가 비슷한) 피아노 교습 받는다면서 쉬운 바흐의 2성 인벤션 1번 연주 영상을 올려놨던데, 그걸 보고 오랫만에 피아노를 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봤더니 이게 영 생각같지 않게 손가락이 전혀 안돌아가는 거다.

몇 년 전에 맘먹고 집에서 피아노를 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피아노 전공하는 누님과 함께 가서 그래도 비교적 괜찮은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를 집에 모셔 놨었는데, 마음 뿐, 그 이후로 한번 제대로 피아노를 쳐본 적이 없었다.

다시 두들겨 본 피아노는 전혀 질이 안나서 소리는 먹먹하고(치지는 않았지만 다시 조율을 한 지가 반 년이 안된 것 같은데)...

악기에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.


 새 해를 맞으면서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목포에서 차라리 피아노 칠 시간을 마련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우연히 집 부근에 피아노 레슨 현수막이 걸린 걸 보고 찾아가게 된 것. 경희대 나왔다는 선생님은 나이가 60이 넘어 보였다. 그 나이의 경희대 음대가 피아노에서 별 뛰어난 교수도 없었던 것 같긴 하지만, 레슨보다는 사실 안돌아가던 손가락을 다시 예전 상태로나마 돌려볼 수 있을까 해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다녔다.


 2주 정도 지나니 생각보다 빨리 손가락에 힘도 어지간히 돌아왔고 돌아가는 민첩성도 한참 젊었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대충 칠 수 있을 정도까지는 회복된 것 같다. 그래도 전공하신 분이라고 치다가 지적받는 부분을 보면 늘 기본적인, 할 말 없는 부분들.

피아노 레슨은 받지 못했지만 클라리넷은 3~4년 정도 레슨을 받았었는데 그 때 레슨을 받으면서 '아, 피아노는 그렇지 않은 것 같던데 예상 외로 관악기의 아티큘레이션이 보통 아니구나'하는 생각을 했었다. 그런데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것 같은 나이든 선생님에게 레슨 받으면서 느낀 게 '역시 전공이 아닌 내가 보는 악보와, 전공자가 보는 내 연주는 전혀 다르구나' 하는 사실.

거의 책 바르게 읽기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지만 손가락 돌리는 게 아닌 악보에 그려진대로 충실하게 친다는 게 얼마나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지, 평소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악보 보기에 쏟아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.

선 생님은 내가 악보 보는 능력에서는 거의 지적할 게 없다고 몇십년간 머물러 있던 소나티네는 던져 버리고 모차르트 소나타로 바로 들어가자고 하신다. 쇼팽은 강아지 왈츠를 치고 있는데 끝나면 판타지를 한 번 쳐보자는데, 이건 좀 시작부터 엄두가 안나긴 하고.


 2 주 정도 다닌 뒤로는 집사람을 꼬드겨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. 정말 오랜 세월동안 악기 좀 배워보라고 노래를 했지만 안듣던 사람이 웬일인지 이번에는 아무 말 않고 함께 다니고 있다. 바이엘 몇 번호 쳐보고 나서는 이제 피아노가 달리 들리기 시작한다고.

결과를 떠나 나이 들어서 새롭게 시작한 피아노가 생활에 많은 활기를 준다.